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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색결과 ( 90건 ) - 남기고싶은이야기
[남기고싶은이야기 90] 한수양 前 부사장, STS 일관체제 완성··· 세계적인 STS 메이커로 육성
2016년도 포스코의 스테인레스 조강생산량은 연간 326만 톤으로 전세계 생산량의 10%에 육박한다. 매출액은 6조 5000억 원으로 포스코 국내 매출의 15% 정도이다. 이는 스테인리스 일관 조업을 시작한지 27년 만에 이룩한 성과로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더욱..
2017/08/28
[남기고싶은이야기 89] 최광웅 前 부사장, 경영기획·정책 외길 34년 지속성장 토대 놓아
포스코 입사가 일생에서 가장 탁월한 선택 "고려대학교 통계학과를 졸업한 해인 1971년 3월 포스코에 공채 3기로 입사했죠. 입사 전 제일은행에 며칠 다니던 중 포스코 입사 확정 통보를 받고 아무런 망설임 없이 포스코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최광웅 전 부사장은 인..
2017/08/10
[남기고싶은이야기 88] 정용희 前 상무, 쇳물에 혼(魂)과 생명력 불어넣는 제강인의 삶 자랑스럽다
포스코에서 첫 쇳물이 쏟아져 나온 1973년 6월 9일을 '철의 날'로 기억하고 있듯이 닷새 뒤 6월 14일은 포스코가 최초로 제강공장에서 첫 용강을 생산한 날이었다는 것을 기억해 달라는 정용희 전 상무. 그날은 그에게 잊으려야 잊을 수 없는 날이었다. 그날을 생각하면..
2017/07/06
[남기고싶은이야기 87] 최휘철 前 이사, 커미셔닝에서는 건설·조업·설비 모든 분야가 하나로 힘 합쳐야
1972년 7월 4일 포항제철소 생산설비 중 최초로 준공, 조업에 들어간 중후판공장이 가동 한 달도 채 안 돼 변압기 사고를 일으켰다. 영일만 허허벌판에 들어선 설비래야 창고설비, 시험검정설비, 건설 중인 1열연공장뿐이었는데, 중후판공장은 열연공장보다 한 달 늦게..
2017/05/18
[남기고싶은이야기 86] 고학봉 前 부사장, "초기요원들은 국가기간산업 떠받친다는 사명감 하나로 기본에 ..
1970년대, 매월 열리는 포항제철의 월례 사운영회의(社運營會議)는 항상 참석자 모두를 긴장시켰다. 박태준 사장이 직접 주재하는 이 회의에는 전 간부사원이 참석했고, 회사 경영의 어느 부문에서 어떤 질문이 나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간부들은 온갖 현황이 기록된 두..
2017/04/18
[남기고싶은이야기 85] 천신일 세중 회장, 포스텍에 6만 3000평 조건 없이 기부
서울시 성북구 대사관로 13길로 접어들자 '우리옛돌박물관'이 시야에 들어왔다. 천신일 회장은 사무실에서 취재진을 맞았다. 천 회장은 지금도 각종 기업활동, 사회활동, 체육활동 등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정력적인 활동가로 주된 근무지를 우리옛돌박물관으로..
2017/04/12
[남기고싶은이야기 84] 박계생 前 이사, 포스코 최초로 품질개념 도입해 '품질제일주의' 정착시키다
1970년 초만 하더라도 기업에서 'KS표시 허가'를 획득하기 위해서는 경영진이 직접 팀장이 되어 별도 추진팀을 구성하고, 이를 중심으로 '품질보증 체제'를 구축에 나서고 전사적 쇄신작업을 진행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KS표시 허가 획득은 그만큼 어려운 일이었다. ..
2017/01/31
[남기고싶은이야기 83] 김명원 범우연합 회장, 포스코와 함께 한 40년··· 세계 1위 금속 가공유제 전문..
범우가 포스코에 사업의 첫발을 들여놓은 것은 1977년이었다. 2년 전인 1975년부터 1977년까지 연합철강(現 동국제강)에 스킨패스유(Skin Pass Oil)와 압연유(壓延油) 공급에 성공한 후 현대자동차에 프레스 윤활방청유, 일신제강(現 동부제철)에 특수 파이프용 방청유..
2017/01/19
[남기고싶은이야기 82] 오세철 서울엔지니어링 회장, 포스코와 함께 한 50년··· 풍구(風口) 시장점유율..
포항제철소 제선부에서 서울엔지니어링에 고로에 사용되는 풍구(風口)라는 동주물(銅鑄物)을 만들어 보겠느냐고 제안해 온 것은 1973년이었다. 이는 포항제철이 아직 고로 조업을 시작하기도 전이었다. 그러나 막상 개발에 착수하려고 하니 조건이 매우 까다로웠다. 포..
2017/01/05
[남기고싶은이야기 81] 김광호 前 상임감사, 종아리 퉁퉁 붓도록 재무부·금융기관 찾아다닌 끝에 부도 막..
박태준 회장은 포항제철은 선조의 피의 대가인 대일청구권자금으로 건설된 국민 자산인 만큼 언젠가는 국민에게 되돌려드려야 한다는 신념을 견지하고 있었다. 이러한 신념은 광양제철소 1기 설비가 종합 준공된 1987년 6월부터 현실화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1988년 ..
2016/12/21
[남기고싶은이야기 80] 김권식 前 부사장, 타성에 젖어 변화 거부하면 발전 없어··· 끊임없는 '학습' 중..
제주국제공항에서 그리 멀지 않은 주택가의 조그만 찻집으로 들어선 김권식 전 광양제철소장(부사장)은 만면에 웃음을 띠고 취재팀을 반겼다. 제철소장, 군대 조직으로 말하자면 야전사령관이다. 그러나 그에게서는 현장을 호령하던 지휘관의 카리스마보다는 주유천하(..
2016/12/14
[남기고싶은이야기 79] 신수철 前 상무, 통섭에 기반한 고유기술 개발로 세계 최고의 제철소 만들다
1973년 공채 5기로 입사한 신수철 전 상무가 신입사원 연수를 거쳐 처음 받은 보직은 조직개발실 설비자동화담당이었다. 이후 전산 쪽에서 오래 일했으니 이제는 직접 제품 생산을 담당하는 공장으로 가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상사의 권유에 따라 2후판공장장으로 간 것..
2016/12/07
[남기고싶은이야기 78] 엄하용 前 상무이사, 판매 외길··· 공장 가동 초기, 해외 수출선 확보 주력
103만 톤 체제의 포항 1기 설비는 1973년 7월 3일 종합 준공되었지만, 압연라인의 중후판공장과 열연공장은 1972년 조기 준공되어 수입 슬래브로 생산에 들어갔다. 판매부서는 포항제철 최초의 제품인 후판과 핫코일을 시장에 내놓았다. 당시 국내 철강 수요산업은 보잘..
2016/12/01
[남기고싶은이야기 77] 김종필 前 국무총리, 포스코는 민족자금 그리고 조국근대화 사명감으로 탄생한 기업
대한민국 현대사의 격랑을 온몸으로 헤쳐 오는 과정에서 수많은 부침을 겪으면서도 멋과 풍류를 잃지 않았고, 로맨티시스트로서의 면모를 견지해온 김종필 전 국무총리는 1950년대의 우리나라의 상황을 떠올렸다. 좌우 대립이 극심했던 해방공간을 거쳐 정부가 수립되었..
2016/11/14
[남기고싶은이야기 76] 이선종 前 상무이사, 국내 최초로 공장자동화 개념 도입··· 첨단 IT기술의 제철..
260만 톤 체제의 포항 2기 설비 건설이 한창 진행되고 있던 1975년 초여름, 정봉화 영일기업 초대회장은 포항제철 건설 현장에는 뭔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분명 있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서울 집을 나서 포항으로 향했다. 벌써 몇 년째 집에 돈 한 푼 가져다 준 일이..
2016/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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